Page 84 - 2018~2019 강원도 마을공동체 우수사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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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마을생활 주민들이 들려주는 우리마을 이야기
그 뒤 밭에 나가 일하다가도 공사팀이 산으로 올라간다는 소리만 들리면, 가파른 산기슭을
그들보다 먼저 달려 올라가 포크레인 앞에 드러눕고 용역들 다리를 붙들고 매달리기도 하
며 온몸으로 산을 지켰다. 총 954일을 길에서 밤을 새우고 생전 처음으로 경찰서를 들락거
리게 되었다. 땅과 하늘만 살피며 농사만 짓고 살던 사람들이 범죄자 취급을 당했다. 심지어
마을주민 27명은 알지도 못하는 각종 죄목으로 고소·고발을 당하는 일까지 겪으며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하고 그렇게 십여 년을 살아야만 했다.
공동체 활동의 시작
산을 지키고 공동체를 지킨 사람들의 과제
결국, 구만리에 골프장이 들어오지 못했다. 그리고 마을재산 탕진과 고소·고발 벌금으로
인한 산더미 같은 빚도 남았다. 그러나 구만리는 공동체를 지켜냈다. 대대로 이어 내려온 땅
을 지키고, 그 땅에서 생명을 키우는 농부와 농업을 지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지켜내
었던 끈끈한 경험이 서로를 아주 단단하게 묶고 있었다. 우리에겐 ‘우리’가 있었고, 현실적
인 문제 속에서 ‘우리’를 지키기 위한 또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공동’보다는 ‘개인’이라는
단어가 더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시대에 구만리는 공동 경작지를 마련하고 함께
콩을 심었다. 세 알의 콩이 싹을 틔우고 일어나 서로 의지하며 바람과 해를 이겨내고 튼튼
하게 자라듯이 콩마을의 공동체도 서로를 의지하며 그렇게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함께 키
운 콩으로 메주도 쑤어 팔았다. 구만리에서 공동경작과 전통장을 담그는 공동작업은 끊임
없이 우리를 모이게 하고, 구만리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결속시킴과 동시에 공동의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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