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원랜드 희망재단 윤정열 팀장


    # 마을공동체사업을 돌아보며

       가을 하늘에 새털구름, 뭉게구름이 아름답다. 모양이 같은 구름은 하나도 없이 다양하다. 우리 마을들도 똑같은 마을은 없다.
    만개의 마을이 만개의 색깔은 가지며 다양성이 살아 있다. 그 다양한 공동체가 살아 움직이며 아름답게 성장하도록 하기 위한
    <강원도 마을공동체 지원사업> 이 2014년도에 시작되어 햇수로 7년째에 이르렀다.

       이제는 도 단위의 <강원도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가 생겼고, 시·군 단위 공동체 지원센터도 생겼다. 10년 가까운 세월 속에 강원도의 마을공동체는 아이가 자라듯 조금씩 더 성숙해 가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마을공동체 컨설팅을 진행했던 지난 8년을 돌아보면 감회가 새롭고 많은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가지만 한발 떨어져 보면 고민되고 바라는 점들도 없지 않다. 코로나19로 공동체 활동이 위축되고 힘들어지는 부분이 많지만 생활의 일부가 우리의 공동체 활동이다. 더 나은 마을공동체를 위해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을 생각해 본다.

    # 마을공동체 속으로 들어가다

       2007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고향 마을을 아름답고 건강하며 매력 있는 마을로 만들어보겠다고 귀향하여 새로운 도전을 했다. 마을이 워낙 말 많고 갈등으로 인한 사건들이 잦은 데다, 계곡을 따라 길이가 9km에 걸쳐 띄엄띄엄 세대가 흩어져 있어 마을 일을 보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사업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던 터라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기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고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와 기존 기득권 세력의 위협과 협박 등 험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마을 이장을 맡게 되었다.

       목적은 내가 살고 싶고 함께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었다. 살기 좋은 마을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하면서 그동안의 좋지 않았던 점들을 고쳐 나가보자고 주민들에게 제안하였고 공모사업에 응모를 하여 마을의 변화를 위한 사업비도 확보하겠다고 당찬 결심을 밝혔다. 1년 간 마을가꾸기에 거의 모든 주민이 참여하였지만, 그 해 ‘참살기좋은마을가꾸기사업 공모’에서 탈락하였다. ‘새농어촌건설운동 우수마을’ 응모에서도 탈락하고, ‘농촌전통테마마을’ 심사에서도 탈락하였다. 비난과 한숨이 들려왔고 작은 노력으로 마을을 변화시키는 것은 욕심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복동아리 마을 환경개선 주민참여 모습 ⓒ윤정열 팀장

    # 마을의 문제, 학습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하다

      이듬해 마을분들과 다시 한 번 열의를 다지면서 마을환경 개선부터 주민 인식개선을 위한 활동까지 함께 하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들이 있었지만 주 5일 저녁마다 어르신 문해교실을 두 시간씩 진행하였다. 마을회관에서 4km를 가서 차로 모셔오고 밤 9시에 학습이 끝나면 모셔다드렸다. 쉰 살이 넘은 분들부터 칠순이 넘은 분들까지 열 명이 넘는 인원이라 아랫마을로 한번 윗마을로 한번, 한 방향으로 두 번씩, 하루에 총 네 번을 운행했다. 당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한글교실을 운영하면서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때 참여하신 어르신들이 스마트폰을 쓰시면서 문자를 보내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을 보니 그때의 고됨은 눈 녹듯 사라졌다. 기록한 것을 못 읽고 당신의 이름 석 자를 못 쓰니 글씨를 아는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고 속여도 알 수가 없는 터였다.

    # 마을공동체 지속을 생각하며

      2011년 38명의 주민이 참여하여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었다. 이 시기에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함께 지켜나가야 할 약속, 즉 규정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었고 규정을 위반했을 경우에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규정에 따라 조치를 하였다. 지금은 관계를 회복했지만 이로 인해 가까운 두 사람에게서 쓴 소리를 듣고 사이가 멀어지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일부 가까이 했던 사람을 잃은 대신 신뢰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공동체에서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이 되고 한 두 사람 말솜씨 좋거나 권위를 가진 사람에 의해 휘둘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직 지자체의원 출신이나 언론인 출신이 있는 공동체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례를 마을 현장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공정하고 공평한 기회와 규정을 잘 만들고 지키는 것이었다.

    # 공동체 리더에 대한 생각들

      마을공동체를 위한 활동에 많은 이들이 리더의 봉사와 희생을 주문한다. 그들이 대가를 취득하는 순간, 영웅이 하루아침에 도둑이나 횡령범으로 오명을 쓰기도 한다. 투명한 회계와 증거를 제시해도 옆 사람이 증언을 해도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리더가 했지만 아직 우리 문화는 리더의 역할에 대한 보상을 얘기하면 시선이 좋지 않다. ‘공동체를 위한 리더의 역할’로 당연시 해버린다. 그 리더가 손을 놓고 또 다른 리더가 그 일을 해도 똑같은 현상이 되풀이되고 경제공동체로 사업화가 추진되어야 비로소 보상체계를 말할 수 있었다.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아 오래가는 리더가 드문 것이 현실이다.

      마을공동체 대표로 활동하면서 6년 동안 운영하던 사업체와 토지 한 필지를 처분하여 생활하였다. 마을공동체 대표 12년, 마을기업대표 6년의 활동 중에 주민창업기업과 사회적경제, 마을공동체 컨설턴트, 농어촌포럼을 진행하는 퍼실리테이터 활동을 함께 하였다. 2017년 강원랜드희망재단에 입사하였고 현재는 재단에서 사회적경제지원사업 업무를 하고 있다. 마을 일을 내려놓은 후 마을과 영농조합의 대표를 맡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리더로 나서지 않아 지금은 아내가 마을과 마을기업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지역의 리더에 대한 무조건적인 봉사요구는 마을공동체 활동으로 경제활동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는 리더들이 마음을 바꾸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쉽게 말해 경제적으로 상황이 안 좋아지고 사람에 지쳐 결국엔 편한 삶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마을을 이끌어보지 않은 사람들, 학계나 정치계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좀 더 가져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마을단위, 공익적 목적의 공동체와 마을 내 소규모의 활동 공동체를 이원화하고 활성화 방식의 접근을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을의 리더가 제대로 대우받고 양성되지 않으면 행정의 가동성이 비효율적이 될 뿐만 아니라 마을의 변화와 발전은 미약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 공동체리더 지원프로그램의 필요성

      공동체활동 초기,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마셨던 커피와 스트레스는 나의 신체 장기 일부를 잘라내게 만들었고 건강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건강과 경제력은 중요하다. 대수술 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한 사람의 리더를 믿고 의지하는 다수의 사람들로 인해 중도 포기를 할 수 없었다. 결국 봉합부위의 실밥을 풀지 않은 상황에서 춘천으로 리더교육을 다시 오르내렸다. 지금도 나는 공동체의 리더를 지원하고 양성하는 정책과 프로그램이 대한민국의 마을을 다시 바꾸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좋은 프로그램은 올바르고 치우치지 않고, 소통하며,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공동체의 핵심리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통찰력과 판단력, 소통과 합의의 기술, 문제해결력과 실천력은 프로그램을 통해 향상될 수 있고 그들의 활동에 대한 보상은 제도적 뒷받침이 따라야 할 것이다.

    # 공동체 사회문제와 경제활동의 연결

       12년의 마을공동체 리더의 경험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사회적경제지원과 연결된다. 공익과 공동체, 나눔과 배려, 공존과 공생, 기타 많은 사회적 가치들을 만들고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경제활동으로 지속성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돕는 활동을 한다. 사회적경제는 사회에서의 문제를 경제적 방식과 결합해 해결해 나가는 것으로 마을공동체와 융합되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마을공동체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다양하다. 정주환경의 문제부터 육아, 경제활동, 교육, 문화적 소외, 취약계층 생존, 의료여건 불리 문제, 고령화에 따른 케어문제, 환경오염의 문제 등 지리적 위치와 산업여건, 취락형태, 연령분포에 따라 다양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개별 마을공동체는 그 문제들에 대해 내·외부의 도움을 받아 개선방법을 찾거나 또는 문제를 방치한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도전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에 선택이다. 경험해 본 공동체는 도전을 할 필요와 그 가치를 알고 있다.

    △복동아리 마을 워크숍 진행 및 마을식당 운영 모습 ⓒ윤정열 팀장

    # 우수 마을공동체의 특징

       주로 폐광지역인 태백, 삼척, 정선, 영월지역의 마을공동체를 살펴보고 컨설팅하며 여건이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나왔다. 무료 사회봉사활동 공동체에서 육아 및 주부들의 취미활동 공동체, 농촌경제 공동체, 지역축제를 위한 공동체까지 다양하고 작지만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공동체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우수한 공동체들은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다. 첫째, 함께 의논하고 합의하여 결정한다. 특정인의 주장에 따르기보다는 함께 합의결정을 한다. 둘째, 신뢰하는 핵심리더가 있고 구성원들의 역할이 잘 나뉘어져 있다. 구성원들은 리더를 이해하고 잘 따르며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해 낸다. 셋째, 배움이 있다. 교육적 방법, 혹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관계망, 즉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고 있다. 구성원들의 인적네트워크와 소셜네트워크, 단체, 기관 등 다양한 네트워크의 도움과 참여, 협력은 공동체 활성화의 중요한 요소이다. 도시지역의 공동체 활동들은 네트워크가 용이하고 역동적이다. 도시와 농촌지역의 마을공동체 네트워킹은 각각의 공동체가 지닌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

       마을공동체의 역동성과 추진력은 위의 네 가지가 잘 될수록 활발하다. 그들은 마을공동체 사업비를 어떻게 활용하면 최대의 효과가 날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한다. 마을공동체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리더 자신이 해 보고 싶은 일을 하는 공동체와는 질적으로 다르고 성과도 다르다. 이러한 네 가지의 과제는 시·군 단위에서 마을공동체에 대한 가까운 지원체계와 프로그램을 만들고 밀착 코칭을 병행한다면 한층 더 성숙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늘 따라다니는 예산에 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통 큰 연대를 통해 공감대를 만들고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강원도 마을공동체 컨설팅 모습 ⓒ윤정열 팀장

    # 마을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하며

      공동체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과 마을이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자원이다. 그것이 밑천이고 거기서 출발한다. 계속 존재해왔던 것이지만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는 새롭게 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의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리더를 위한 상시 프로그램 운영이다. 이는 지역주민의 참여 개념을 뛰어넘어 청년, 대학생들이 동참할 수 있는 매력이 있어야 하고 이들을 위한 차세대 마을공동체 리더 양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와 소통, 다양한 아이디어 도출과 적용, 인문학, 철학, 사회적경제학의 토대 위에서 프로그램 참여 기회제공이 되어야 한다. 참여 동기를 제공하고 정책지원이 연계되어야 한다. 프로그램을 통한 리더 양성을 통해 마을이 가지고 있는 밑천, 즉 유·무형의 자원을 스스로 찾고 이웃마을과 연대해 나가야 한다. 외부에서 일회성으로 찾아 준 마을자원은 한계가 있다. 밑천을 최대한 많이 찾아내고 활용할 방안을 스스로 고민해 가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를 이끌어 갈 역량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기관 협업이다. <강원도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와 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회혁신과 리빙랩, 도시재생사업, 사회적경제영역을 잇는 네트워킹과 정보공유, 정책공동생산을 더 활발히 추진해야 한다. 현장이건 지원기관이건 결국엔 사람으로 귀결된다. 핵심인재를 위한 사람과 기관의 협업이 필요하다.

      셋째, 마을공동체의 우수사례와 프로그램의 확산을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정보 빠른 이들이 마을공동체사업비를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좋은 사례를 접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전장을 낼 수 있도록 하려면 확산의 경로와 매체, 방법을 다각화 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을 활용하거나 방송을 통한 전파는 확산속도가 빠르다. 자연과 함께 공동체와 함께 하는 삶을 조명하여 전파함으로써 아름답고 참다운 삶은 함께하는 삶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르신들이 외로울 땐 자연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찾게 된다.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스마트폰을 활용하시는 어르신들이 늘어나고 있고,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리더들이 많아졌다. 코로나19 위기에 더욱 공동체가 중요해지고 있다. 서로 만나지 못하여도 돌볼 수 있고, 소통할 수 있고, 문화적 향유를 하며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정상적인 삶에 가까이 근접할 수 있다. 사업이건 사례건 공유와 확산은 늘려가야 한다.

      넷째, 지속과 생존을 위한 경제활동의 실천이다. 현재의 상황은 전시 상황에 준한다고 정부에서 밝힌 바 있다. 그래도 경제활동은 해야 하므로 마을이 소비시장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경제의 지역순환이 활발할수록 이 위기는 슬기롭게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마을기업을 비롯한 사회적경제와 함께 대책과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 글을 마무리 하며…

      가을비가 촉촉이 내린다. 수확의 계절에 오는 비가 무슨 소용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농작물들이 너무 말라 땅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고 뿌리채소들이 더 잘 뽑히도록 돕는 것이 가을비다. 겨울의 눈 또한 아름답고 불편하지만 대지를 축여 싹을 틔우게 하고 봄의 가뭄을 덜어 준다. 지나온 강원도 마을공동체 지원 활동들이 마을에 필요한 촉촉한 비의 역할을 해 왔음을 느낀다. 아름다운 싹을 틔울 수 있게 하고 결실을 볼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백가 사상가들은 각각의 시대환경에 따라 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군주의 통치에 영향을 주었지만 공동체는 늘 변화하고 지속되어 왔다. 코로나19로 공동체는 또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정책적인 지원의 필요성, 효과성들을 거론하기 이전에 투입하여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 것들이 오래 갈 수 없는 자연의 이치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거름이 되고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마을공동체는 알고 있다. 성급히 서두르지 말고 상황에 맞게 대응하면서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지금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