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줄은 이렇게 만들어 졌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홍천군 동면은 홍천읍과도 인접해 있는 곳이자, 서울과도 자동차로 1시간 반 이내로 갈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매년 귀농인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5~6년 전부터 동면에는 도시생활에 지쳐 전원 속에서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젊은 귀농인들이 스스로에게는 쉼을 주고, 아이들에게는 자연과 더불어 해맑게 뛰놀며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하면서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공동체 활동의 시작은 2017년입니다. 우리 동네에는 2개의 분교가 있는 속초초등학교와 동화중학교가 있지만, 아이들이 우리가 기대했던 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아이들이 방치된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속초초등학교의 도서관이 활용되지 못하고 문이 잠긴 것을 본 어느 학부모님이 아이들에게 도서관의 불을 켜주고 독서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학부모 독서 동아리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이 모임에서 학부모님들은 당번을 정해 매일 점심시간에 도서관을 개방하고 학생들에게 책을 대여하는 사서봉사일과 좋은 책들을 선정하여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책놀이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책과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학부모님들은 양서를 추천하여 읽고 토론하는 독서 모임활동도 하였습니다.
지속적으로 모임 활동을 이어나가는 와중에, 동면의 아이들이 시골에서 배울 수 있는 작은 학교의 경험을 더욱 충분이 누리기 위해서는 독서 동아리의 형태의 활동보다 학부모가 학교와 마을을 연계한 교육공동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을을 새끼줄로 엮어내자
우선 학부모님들은 마을에 숨어있는 마을 선생님들을 찾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놀랍게도 미술, 음악, 공연, 독서, 교육 등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마을 선생님(마임니스트, 연극배우, 문화예술 기획자, 오페라 연출가, 약사, 명상가, 동양화가, 서양화가, 기타연주가, 피아노 연주가, 조형예술가, 목수, 제빵제과전문가, 바리스타, 영어교사 등)이 계셨습니다.
마을 선생님 모임을 통해 활동의 취지를 설명 드리며 공동체의 뜻을 모았고 속초초등학교, 노인회, 면사무소, 이장님들을 찾아 인사를 드리면서 장소제공, 시설 사용 등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만남을 통한 지역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마을선생님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좋은 프로그램들을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2018년 4월 7일 새끼줄 첫발뛰기 행사를 하였습니다. 아이들, 학교선생님, 마을 선생님, 면장님, 마을 이장님, 노인회장님 등 마을 분들이 모여 새끼줄을 축하해 주셨으며, 모두가 꽹과리와 북을 치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마을 구석구석 새끼줄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마을교육공동체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공동체 활동을 이어나나기 위해 마을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강원도 교육청의 온마을학교 사업, 마을공동체사업과 홍천군청의 귀농·귀촌창업 및 지역기여사업,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 꿈이음사업, 강원교육희망재단의 강원인재양성 고향교육프로젝트 등 다양한 사업에 지원하여 예산을 확보하는 행운도 얻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프로그램 그리고 마을 콘서트
2018년 봄부터 프로그램을 시작하였습니다. 격주 토요일마다 전통무술 택견강습을 진행하였고, 텃밭에서 먹거리를 직접 심고 재배하고 음식을 만들어 보고, 동네 어르신과 같이 먹어 보는 텃밭수업도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로빈슨크루소 프로그램은 각각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숨어있는 욕구를 표현하게끔 유도하고 스스로 실행함으로써 결과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입니다. 아이들의 만족도가 좋아 2019년에는 학교 내의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들어가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기타리스트 윤두형 선생님은 아이들이 음악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즐길 수 있도록 재미있고 신나는 음악교실을 진행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작사·작곡하여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자작곡을 음악 녹음실에서 녹음을 해보는 경험도 하였습니다.
마을 선생님이 학교 수업으로 연계하여 진행하는 차상원 목수님의 한옥이야기, 김철원 선생님의 붓놀이, 생태학습, 아이들 장터 등 하나 하나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만큼 바쁘고 힘들고 어려웠고 서툴기도 하였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을에서는 마을회관을 선뜻 빌려주셨고, 동면 자율방범대에서는 차량을 지원하여 아이들의 참여와 귀가를 도와 프로그램을 수행하는데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2019년도에는 2018년도와 같은 규모의 사업을 진행하였는데,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을의 삼촌들도 함께 참여하였다는 점입니다. 삼촌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학생 친구들과 함께 마을 방송국을 진행하였습니다. 방송장비에 대하여 공부도 하고, 동영상을 촬영해 보기도 하고 1박2일 캠프 활동을 통해 서로 허물없이 놀기도 하면서 마을 삼촌들과 중학생들이 좀 더 친밀해 지고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외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내면의 안정과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기 위하여 마을 명상선생님의 ‘깨어있음’ 수행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방법을 배워 나갔고, 공동체 역량강화 수업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 각자의 다른 점을 서로 이해하고 나의 욕구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 나갔습니다.
여러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 깊은 프로그램 하나를 꼽자면 단연 돋보이는 것이 텃밭콘서트입니다. 텃밭콘서트는 텃밭 수업에서 아이들이 직접 심고 가꾼 텃밭 식물들에게 잘 자라기를 기원하며 노래를 불러 주자는 취지로 기획하였는데, 진행이 될수록 아기자기한 생각들이 모아지면서 마을 행사로 커졌습니다.
첫 해에는 아이들이 직접 개사하여 만든 텃밭송을 시작으로, 아빠와 딸의 오카리나 연주, 선생님과 학생의 플룻 연주, 마을선생님의 음악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이 직접 작사·작곡한 동요들, 드럼과 전자 기타의 어설픈 사운드를 자랑하는 밴드 공연을 끝으로 텃밭 앞의 공터에서 시작된 제1회 텃밭콘서트는 막을 내렸습니다. 미숙하였지만, 어쩌면 미숙하여서 모두 즐거웠습니다.
올해 두 번째를 맞이한 텃밭콘서트는 전년도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더욱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장소는 동면 사람이면 누구나 익숙한 면사무소 앞마당이었습니다. 귀촌한 오페라 연출가인 이해동님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동동가족합창단>, 속초초등학교 6학년 학생으로 구성된 아카펠라 동아리 <컨츄리 앨리스>, 학생수 부족으로 해마다 폐교가 논의되는 좌운분교 학생들과 선생님의 리코더 연주가 함께 하였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이어진 아빠와 딸의 오카리나 연주, 아이들이 작사·작곡한 동요, 동네 청년으로 이루어진 젊은 밴드 <동네문화살롱> 등 풍성한 무대였습니다.
텃밭콘서트는 아이들과 마을 분들이 출연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을이 함께 만들어 가는 축제입니다. 공연의 연출은 아이디어 뱅크인 마임이스트 흥남씨가, 무대감독은 한옥 목수인 상원씨가, 촬영감독은 마을방송국을 이끌고 있는 윤호씨가, 음악감독은 기타리스트 두형씨가, 사회는 연극인 소리씨가, 기획은 공연기획 경험이 있는 효숙씨가 힘을 보탰습니다. 또한 안전도우미, 상차림, 사진 촬영, 의전까지 모두 마을 사람들이 한 자리씩 역할을 맡아 일했습니다.
공연 장소, 의자 등 여러 물품은 면사무소에서 기꺼이 내주셨고, 공연장 한편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제공한 팝콘 기계와 재료로 초등친구들이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 묵묵히 팝콘을 튀겨내어 동네 분들께 골고루 나누어 드렸습니다. 백여 개의 객석 의자는 아이들의 손길로 하나하나 옮겨졌으며, 중학교 마을 방송국 팀원 12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콘서트의 현장을 촬영하여 실황중계를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일손이 필요할 때마다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동네 삼촌 이모들, 목소리 높여 응원해주시고 박수를 쳐주시는 동네 어르신들, 텃밭콘서트는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모두가 손을 보탰고, 모두가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마을, 공동체, 새끼줄의 남은 숙제
2년 동안 새끼줄은 약 200회의 수업을 진행하였습니다. 한주에 한 두 번의 수업을 쉴 새 없이 진행하면서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바쁜 만큼 마을이 변화해 나가는 것이 눈에 보여 보람도 컸습니다. 아이들은 마을 곳곳에서 뛰놀게 되었고 아이들의 울타리는 학교를 넘어 마을로 확대되었습니다. 주변에서 새끼줄에 대한 좋은 평판이 생기면서 위상도 높아졌고 여러 잡지와 신문에 새끼줄이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행복하고 뿌듯한 일이지만 운영하는 분들은 과로로 인해 많이 지쳐가고 건강에 무리가 오기도 하였습니다. 힘듦과 보람이 공존한 두 해를 보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합니다. 마을이란 무엇인지, 새끼줄을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지, 마을 공동체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천천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정리되지 않고 남아있는 과제에 대하여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 마을
마을이라는 단어에는 ‘정이 넘치는 곳’,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곳’, ‘자연과 함께 공생하는 곳’, ‘느리지만 가치 있는 곳’ 등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따뜻함이 포함된 언어입니다. 그래서 마을은 경쟁체제에서 미친 듯이 살아가는 현대 사회가 추구해야할 미래사회의 모델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마을과 현재의 마을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과연 미래사회의 모델이 될 만큼 현재의 마을에는 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 마을의 변화
과거의 마을공동체가 형성된 바탕에는 공동의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농업은 많은 사람들의 협업을 바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함께 모여 계획을 짜고, 함께 모내기를 하고, 함께 수확을 합니다. 공동의 일은 함께하는 문화를 만들어 내어 출생, 결혼, 장례 등 의 관혼상제에는 온 마을이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했습니다. 이처럼 공동의 일은 사람들의 행동양식에 영향을 주고, 마을의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요즘의 마을은 공동의 일이 현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거대한 트랙터가 혼자서도 100마지기의 밭을 거뜬히 매고, 수확하는 기계인 콤바인은 몇 십의 장정이 몇 날을 해야 하는 가을 추수도 하루 만에 해치웁니다. 마을은 공동의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 빈자리를 빠르고 거대한 기계들이 차지합니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전체 사회 속에서 농촌은 소규모 농업에서 대규모의 농업으로 바뀌어 가고, 사람의 협업에서 기계의 힘으로 변화되어 결국 마을은 예전의 마을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 현재의 마을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
이미 싱거워진 현재의 마을이 아름다운 문화가 꽃피는 새로운 마을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일을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나 시골에서 공동의 농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공기도 맑고 경치도 아름다운 시골에 사람이 없는 이유는 먹고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마을이 아름다운 문화로 꽃피우기 위해서는 우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일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 새끼줄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지속성
2020년 현재 새끼줄은 지역 아동의 방과후 돌봄을 책임지는 영귀미돌봄터를 홍천군과 공동운영하고 있으며, 공동체로서 보다 나은 체계를 갖추기 위해 사회적 협동조합을 신청하여 가을이 오기 전에 인가가 이루어질 듯합니다. 또한 홍천 동면 안에 있는 작은 폐교인 신봉분교를 5년간 임대 계약하였고, 이곳을 문화예술학교의 형태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새끼줄은 이러한 외형의 단단해짐과 더불어 새끼줄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세 가지 고민을 염두에 두고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첫째, 개인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가, 둘째, 가정에게는 생계를 위한 경제적 이익을 만들고 있는가, 셋째, 지역을 위해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천천히 가더라도 이 세 개의 축이 균형을 이룰 때, 새끼줄은 지속성을 지닐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누군가의 희생과 열심만을 통해 성취해 내는 것이 아니라, 공익, 경제적 이익, 개인의 즐거움이라는 여러 개의 과제를 균형 있게 이루어 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끼줄은 마을공동체의 미래와 지속성을 위해 이 과제들을 즐겁게 풀어나갈 것입니다.